공부71 사랑의 실천자, 김요석 목사 (1) 사랑의 실천자이신 김요석 목사님을 소개합니다-1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에서 15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서지만 영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나환자 정착촌인 영호 마을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 글은 영호를 방문하였다가 그들의 삶에 감동한 김요석 목사님의 독일 친구인 클라우드-디터 그래스가 1991년에 독일에 먼저 소개하였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10년간 영호 교회에서 사역하시다가 중국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아는 분이 없는 상태이기에 부득이 독일어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국 티벳에서 나병환자를 돌보며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의 지체들은 영호라는 작은.. 2019. 9. 24. 원어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영어 속담 20가지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 Don't put all your eggs in one basket. - 한 가지 사업이나 투자에 모든 것을 걸지 마라.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 - 겉만 보고 속을 판단하지 마라. One man's trash is another man's treasure. - 어떤 사람에게는 쓰레기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일 수 있다. Too many cooks in the kitchen spoil the broth(육수)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 - (말만 앞서가는 친구에게) 말보.. 2019. 9. 18. 이영채 교수 특강 - 1강 일본은 왜 역사반성을 하지 못했는가? 전후 한일관계의 전개과정과 전망 하토야마 전수상은 오키나와미군기지 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베 현수상은 포츠담선언문을 읽지 않았다. 일본 자민당은 미디어 전략을 잘 구사하고 있다. 일본 미디어는 국가의 가이드라인에 따른다. 1. 한류 시대와 신한일관계의 전개 - 겨울연가 방영후 5년이, 한류의 전성시대 - 한국을 공부하는 것은 일본내의 상식을 공부하는 것이다. - 전후 한일관계는 3단계의 전환기로 형성 1) 45년 8월, 식민지에서 독립 2) 65년, 한일국교정상화 3) 98년, 한일파트너십 선언 - 김대중대통령의 탁월한 정치력 - 일본 내 호적에 '조선'이 표기되어 있다. 귀화를 하더라도 확인이 된다. - 일본은 한국의 분단상황, 의무복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 일본여성들은 겨울연가, 일본남.. 2019. 9. 8. 가장 자주 쓰이는 영단어 1000 1.abandon 2.ability 3.able 4.abortion 5.about 6.above 7.abroad 8.absence 9.absolute 10.absorb 11.abuse 12.academic 13.alternative 14.approach 15.appropriate 16.approval 17.approve 18.approximately 19.Arab 20.architect 21.area 22.argue 23.argument 24.arise 25.arm 26.armed 27.army 28.around 29.arrange 30.arrangement 31.arrest 32.arrival 33.arrive 34.art 35.article 36.artist 37.artistic 38.as 39.As.. 2019. 5. 1. 영어 표현 - 정중한 거절 Not possible. By no means. I’m slammed. Not for me, thanks. Unfortunately, that’s not something I can do at this time. I’m really booked. Thanks for thinking of me. I really wish I could. That’s not an option. This is not negotiable. I think not. If only it worked, but … Not for me my friend, thanks. I have something else. I’d like to, but I know I’II regret it. I really appreciate you asking me.. 2019. 5. 1. 장소 전치사 AT At reception At the side At the bottom At the top At college At university At school At work At home At the door At a concert At the dinner IN In a car In a taxi In Park Street In a row In the sky In the newspaper In a lift In a boat In a helicopter In the bathroom In Paris In the World In the kitchen UNDER Under a tree Under the table Under the chair Under you bed Under a bridge Under the wa.. 2019. 4. 18. 전치사 표현 Prepositional Phrases IN In a hurry In a mess In a way In action In addition In advance (of) In an agreement with In any case In brief In case In cash In charge of In common In comparison with In conclusion In confidence In control In danger In debt In detail In difficulty In disguise In doubt In exchange for In front of In fact In fashion In favour of In front of In future In general In good / .. 2019. 4. 18. 손흥민 챔피언스리그 아시아 신기록 2019년 4월 17일 토트넘 홋스퍼 포워드 손흥민은 챔피언스리그에서 12호골을 기록하였습니다. 아시아선수중 최고의 기록입니다. 우즈벡 선수의 기존 기록을 깼습니다. Spurs forward Son Heung-min is now the highest scoring Asian player in Champions League history with 12 goals, overtaking Maxim Shatskikh of Uzbekistan. (출처: BBC Sports) 2019. 4. 18. [문동환목사 29] 그런 성명 내놓고 무사하겠소? “그런 성명 내놓고 무사하겠소?” “장준하 형, 자네가 있었더라면 세상이 이렇게 어둡지 않았을 텐데….”1976년 2월의 어느 날, 형 문익환은 책상 위에 놓인 장준하의 영정을 들여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의문에 싸인 그의 죽음은 그대로 땅속에 묻혀 버린 것 같았다. 형은 신·구교가 공동으로 구성한 성서번역 위원장을 맡느라 민주화 운동에는 직접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의 사진을 보며 어린 시절의 친구 윤동주도 자주 떠올렸다. “동주야 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부끄러웠다. 그 순간 사진 속의 장준하가 “자네는? 자네는 왜 못해?”라고 말을 했다. 형은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3월1일에는 뭔가 일을 벌여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펜을.. 2019. 3. 18. [문동환목사 28] 갈릴리교회 갈릴리 교회 예수는 부활한 후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갈릴리로 갔다. 갈릴리는 예수 운동이 일어난 가난한 민중들이 사는 땅이었다. 우리들은 민중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신학을 하는 교회를 갈릴리 교회라고 부르기로 했다. 갈릴리 교회는 해직 교수들과 구속자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모이는 교회였다. 나는 해직된 교수들이 함께 엉켜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해직교수들을 모두 우리 방학동 집으로 초대했다. 성서번역을 하느라고 학교를 떠나있던 나의 형 익환도 그 자리에 초대를 했다. 우리 집 뒷산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내가 교회를 만들자고 제안을 하였다. 우리가 첫 예배를 드린 것은 1975년 7월 17일이었다. 새벽의 집 총무인 최승국이 교섭을 해서 명동에 있는 흥사단 대성빌딩에서 약 20명 .. 2019. 3. 18.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