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690 화목케 하는 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태복음 5:13)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마가복음 9:50) 이른 아침에 마가복음을 읽다가 미세하게 충격을 받았어요. 예수님께서 소금에 대한 견지에 일관성을 갖고 계시다면, ‘너희는 소금이라’고 하신 산상에서의 유명한 가르침은 ‘화목케 하는 자’로 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어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으니, ‘세상을 화목케 하라’는 뜻으로 받들어야겠다 싶어요. 소금기는 화목기에 비례하겠죠 화목이 없으면 안되겠군요 아.. 이 말씀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ㅠㅠ _20180312 2019. 3. 12.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갈보리산 위에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멸시 천대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귀한 어린 양이 세상 죄를 지고 험한 십자가 지셨도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주님 예비하신 나의 본향 집에 나를 부르실 그 날에는영광 중에 계신 우리 주와 함께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 2019. 3. 11.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보혈의 공로 힘입어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 박힌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아멘 2019. 3. 11. 악을 보고 철저히 몸서리쳐야 해 "악을 보고 철저히 몸서리쳐야 해" [인터뷰] 문동환 목사, "이명박은 역사에서 비참한 존재 될 것" ▲ 평생 악을 보며 몸서리쳤던 문동환 목사. 아흔을 넘겼지만 한국 현대사와 교회사, 신구약 성경을 종횡무진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 미주뉴스앤조이 3.1민주구국선언으로 대학가에서 시위가 다시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꺼져가던 민주화 회복의 열망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훗날 이만열 교수는 3.1민주구국선언을 “긴급조치 9호로 강요된 침묵을 일시에 깨뜨리는 것”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 일로 문동환 목사는 김대중·문익환·함세웅·이문영·서남동·안병무·문정현 등과 구속기소됐고, 2년 가까이 옥고를 치러야 했다. 같은 시기 조용기·김준곤·김장환 목사 등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앞 다퉈 유신 체제를 찬.. 2019. 3. 10. [문동환 목사 17] 인종 넘은 사랑의 그 거룩한 권리 인종 넘은 사랑의 그 거룩한 권리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나는 폐병 요양원에서 5개월을 더 머물렀다. 몸이 많이 약해져, 주로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수채화를 그리거나 도자기를 빚었다. 폐병 요양원에서는 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미술 수업을 마련해 놓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채화를 그려보았다. 돌이켜보니 조국이 불운하던 시기에 태어나 지금까지 한순간도 편안하게 쉬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청교도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절제하도록 배웠다. 그동안 나는 공부와 일에 매달려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나는 투명한 수채화로 풍경과 화병에 꽂힌 장미를 그렸다. 흙으로 도자기를 빚으면서 모든 시름을 잊었다.요양원에서 느꼈던 삶의 여유로움도 잠시,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2019. 3. 10. [문동환 목사 16] 폐병 유학생 지옥을 다녀오다 폐병 유학생 지옥을 다녀오다 하트포드신학대학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는 1955년부터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예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한여름에는 ‘뉴잉글랜드로 나가는 선교사’(Missionary to New England)라는 장학금을 받아 뉴잉글랜드 지역의 교회들을 순방하면서 미국의 고등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일본 동경신학교에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박봉랑도 이 즈음 미국 애즈버리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신약성서 해석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조직신학을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는 결국 보스턴대학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했다. 그가 카를 바르트를 주제로.. 2019. 3. 10. [문동환 목사 15] 유학비자 발급 하루전 터진 6.25 유학비자 발급 하루전 터진 6·25 1946년 서울로 내려와 51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까지 내 삶은 어디에도 뿌리박지 못한 떠돌이였다. 김재준 목사의 이단 파문으로 시끄러웠던 조선신학교를 1년 만에 졸업하고 목사 자격을 얻었지만 앞날은 묘연하기 그지없었다. 예수의 신성 문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에 목회의 길로 들어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런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 준 것은 신학이 아니라 실존이었다. 아버지와 가족들이 있는 김천 황금동교회로 내려온 47년 여름, 나와 형 익환은 가까운 금오산에 가서 기도하면서 미래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둘은 금오산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기차가 중간에 고장이 나서 ‘대신’이란 간이역에 잠시 머물렀다. 그 역은 언덕 위에 있어서 아랫마을 농촌이 한.. 2019. 3. 10. [문동환 목사 14] 진보 개신교의 밀알 복음동지회 진보 개신교의 밀알 복음동지회 만주를 떠난 이후 뿌리 뽑힌 떠돌이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동료들이 있었다. 1948~49년 대광 중고등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 나는 유관우·유제선·박봉랑·김관석과 자주 어울렸다. 유관우 형은 원래 신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건축사업을 해 생활에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박봉랑·김관석·백리언·김철손은 42년 동경신학대학 예과에 함께 입학한 동기들이다. 우리 다섯은 일본 학생들보다 모두 키가 커서 교실 뒷줄에 나란히 앉아 분위기를 압도했다. 나는 특히 박봉랑과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김관석은 7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로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했다.우리들은 해방 후 나라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모임을 만들어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 2019. 3. 10. [문동환 목사 13] 해고를 화형으로 통역하다 해고(파이어:Fire)를 사형으로 통역하다 사울에서 탈출한 우리는 김천으로 갔다. 마침 그곳에 한국군 정보부대가 주둔해 있어서 영어로 번역해 유엔군에 전달하는 일을 도왔다. 정보부대에서는 인민군 첩자들, 주로 혼자 피란 나온 처녀들을 체포해 조사했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은 순진한 시골 처녀들이었다. 그런데 군인들이 그 처녀들을 뒷산으로 끌고 가 성추행을 한 다음 총살시켜 버리는 흉측한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질겁을 한 나는 다음날부터 부대에 나가지 않았다.얼마 안 있어 인민군이 김천까지 밀고 내려와 우리는 다시 부산으로 피해 갔다. 미군 수송부대에서 일자리를 구했는데, 통역 할 일이 별로 없어 페인트로 ‘입구’, ‘출구’ 등의 안내판을 쓰기도 했다. 하루는 한국인 운전사가 운전.. 2019. 3. 10. [문동환 목사 12] 종교재판을 받은 진보신학 종교재판을 받은 진보신학 형과 내가 1946년부터 일년 동안 다닌 서울 동자동 조선신학교는 1940년 세워졌다.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를 비롯한 신학교들은 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자 목사 훈련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김대현 장로가 일본 경찰의 미움과 감시를 각오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치며 송창근과 김재준에게 학교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총독부의 허가를 받을 수 없어서 조선신학원으로 시작을 했는데 신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사참배를 강요받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었다. 막바지에는 학생들이 평양 군수공장에서 집단노동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김재준 목사는 교장이자 교수, 경리이자 소사로서 끝까지 조선신학교를 지켰다.해방이 되자 김재준과 송창근, 한경직 목사는 서.. 2019. 3. 10. 이전 1 ··· 62 63 64 65 66 67 68 6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