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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신학

사랑의 실천자, 김요석 목사 (2)

by 올미랭 2019. 9. 24.

7.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모두들 들일을 하러 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근처를 돌아보려고 이웃 동네 쪽으로 갔다.
한 채소밭에서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뜯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잠시 후에 할머니는 비틀린 잇몸이 부끄러웠는지 당황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이고, 부처님 오셨네! 저는 항상 살아계신 부처님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는디."할머니는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아닙니다."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이 말밖에는 다른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목사'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수가 누구다요?"   할머니는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주저앉아서 말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는 우리말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구원자'라는 뜻이지요.
예수님은 오래 전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예수님은 할머니나 저와 똑같은 사람이셨지만, 또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십니다.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도와주시고 무엇보다 흉악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요.
예수님은 친구가 많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미워해서 죽여버렸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셨어요.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을 돕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늘도 예수님을 모든 나라에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예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로 우리한테 찾아온당가요?" 할머니는 내 말을 막고 물었다.
"그럼요. 바로 이곳에도 오십니다."
그 사실은 할머니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할머니는 80년동안 부처님을 공양했다. 그러나 그 조각상은 눈 앞에서 항상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절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조상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지만
의지할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였다. 하루가 다르게 힘이 빠지고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다.
그러나 할머니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희망의 빛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도 목사님처럼 예수님 백성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겄네요. 나이가 벌써 여든아홉이나 되았는디!"
할머니는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시면 할머니도 예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면 지금 저를 예수님한테 데꼬 갈 수 있으시오?" 할머니는 조급하게 물었다.
"내일 새벽 네 시에 영호에 있는 우리 교회에 오세요. 매일 새벽기도회가 있거든요. 거기 오시면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어요."

"새벽기도회가 뭐다요? 예수님이 진짜 거기 있어요? 그러먼 제가 제일 좋은 옷 입고 가야 쓰겄네요."

"새벽기도회는 새벽에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과 예수님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적어 놓은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그 책을 성경이라고 부르지요."

"근디 저는 글을 몰라요."
"걱정마세요. 예수님이 할머니와 말씀하실 길을 찾으실 테니까요. 그럼 내일 새벽에 꼭 오세요."

그날 밤 태풍을 동반한 큰 비가 밤새도록 퍼부었다. 길에는 물이 넘쳐 흘렀고 전기는 끊어졌다.
이런 날 노인이 새벽기도회에 나오기는 힘들겠지 . 그런데 성가대가 막 찬양을 시작했을 때였다.
교회 문이 열리더니 그 몸집 작은 할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할머니에게 쏟아졌다.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성경 한 부분을 읽은 다음 설교를 했다.
설교 시간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다들 돌아가고 난 후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왔다.

할머니가 아는 사람은 교회에서 나 혼자뿐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진짜 고맙습니다. 진짜로 제가 예수님을 봤어요."

"그러십니까? 어디에서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목사님 옆에 계신 거를 똑똑히 봤당게요! 목사님하고 똑같이 생겼드랑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제가 볼 때에는 목사님이나 예수님이나 똑같당게요." 할머니는 확신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이 맞다. 우리는 곁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볼 수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또 하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할머니, 아까 예배 시간에 혼잣말씀을 계속 하시는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인자 제가 예수님 만났응께, 인제까지 저 살아온 거 예수님한테 싹 다 애기했당게요.
예수님이 내 얘기 다들어준께 정말로 좋아라우."할머니는 고마워하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새로이 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근디 제가 성경책 읽을라믄 어째야 쓰까요?" 할머니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가 끝난 후에 나에게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말씀드린 대로 할머니는 매일 새벽 나를 찾아왔고, 내가 성경을 펴서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읽어나가면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읽었다.
이렇게 해서 할머니는 성경구절을 배우게 되었고 새벽기도 때마다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외워보이곤 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난 후였다. 할머니는 내가 가르쳐드리지 않은 성경구절들을 외우고 있었다.
"아니, 할머니! 어디서 그걸 배우셨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처음에는 목사님 따라서 외았는디, 예수님이 도와서 인자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았당게요."
마침내 할머니는 글을 깨우친 것이다!

그 후에 할머니는 아예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오셨고, 손자들도 청년부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
할머니가 직접 손자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8.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변함없는 사랑  

처음 영호에 갔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의 사연을 조금씩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느 마을에서 젊은이 한 쌍이 결혼했다.
아내가 임신하게 되자 부부는 정말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에게 문둥병이 발병했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내는 문둥병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소록도로 가야만 했다.

법적으로 남편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둘 수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함께 소록도로 들어가 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은 아기를 부모님 집으로 데려갔다.
이별은 이 젊은 부부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도 문둥병자가 될거야. 그러면 내 마누라, 내 자식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아냐!" 그는 절망으로 절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 년이 지난 후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있는 섬을 찾아 갔다. 아내를 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에 문둥병으로 인한 흉터가 있긴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전 여기서 한 사람을 알게 되었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주저없이 말했다.
" 물론 남자겠지?" 남편은 분노와 질투를 감추려고 애쓰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제가 말하는 그분은 저뿐 아니라 당신도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그 자가 누구야? 대체 어디 있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군!"

아내는 그에게 작은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그것은 목사님이 선물로 주신 신약성경이었다.
소록도로 간 아내는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여보, 이 책은 우리 두 사람에게 다시 희망을 줄거예요.
그것을 읽으면 저의 새 주인이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어요. 꼭 읽어보세요!"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 헤어질 시간이 왔다. 이별은 이 부부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의 소망을 아내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
그는 그후 5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아이를 언제까지 엄마 없이 키워야 하는지 .

그러던 어느 날 소록도에서 소식이 왔다. 아내의 문둥병이 음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아내는 육지에 있는 가족에게 올 수 있었다.
그들은 몇몇 다른 문둥병자의 가족과 함께 영호로 이사했고, 여기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건강한 아이들도 태어났다.

이렇게 해서 이 작은 마을은 점점 커져 갔다. 그들은 마을에 예배당도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웃 동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이들은 언제까지나 똑같은 문둥이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해가 뜨기전, 그들은 작은 교회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었다.
겨울날 영하의 날씨에도 그들은 손뼉치며 찬양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 교회에 오겠다는 목사님은 한 명도 없었다.

긴 세월이 흘렀다. 처음 영호에 온 사람들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문둥병이 재발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한 중년 부인은 약을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문둥병은 늘 그런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와 똑같이 이 마을에서 늘 하나님의 흔적이 있었다.

젊은 남편이 문둥병에 걸린 아내를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문둥병자들에게 신실하셨다.
그 부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영호 사람들은 몸이 다시 나빠질 때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새 가정들이 늘어났다. 소록도에서 사람들이 왔다.
지금 영호에는 약 예순다섯 가정이 백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9.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어떤 부유한 농부 이야기  

영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문둥병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지역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약점보다는 그 약점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때때로 그들도 그것 때문에 더 힘겨워한다.
그래도 '문둥이'들의 신앙생활은 점점 꽃을 피웠다.
우리의 예배 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은 점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마을로 찾아왔다.
건강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사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제 남편을 좀 도와주세요.
그 양반이 지금 많이 아파요. 한의한테도 가보고 양의한테도 가보았는데 전혀 차도가 없습니다.
절에 가서 불공도 드려보고 스님한테 부탁해서 치성도 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했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네요.
우리 동네 애들 말을 들어보니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신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아주머니가 이렇게 영호까지 와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주머니,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나는 물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그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왔지만 예수님을 알고 싶습니다!"
아주머니는 정말 진지하게 말했고,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리 들어오십시오. 좀 앉으시지요." 나는 성경을 펴서 신약을 몇 부분 읽어 주었다.
나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적적인 치료자나 마술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성경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씀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모두 치료해주신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되는 분께 꼭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한테 들은 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부유한 농부의 아내는 몇 번씩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 했다.

며칠 후 그 아주머니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희 집에 좀 와주세요. 우리집 양반이 예수를 믿고 싶대요."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교회 장로님을 모셔와 함께 출발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귀엣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말고요 목사님만 혼자 오세요." 아주머니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가 다같이 갈 수 없다면 저도 안 가겠습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농부의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침내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 함께 가시지요."

우리는 모두 이웃 마을로 갔다.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남자가 고통을 못 이겨 웅크린 채 방바닥에 꼬꾸러져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주변에 둘러 앉았다.
우리는 먼저 찬송을 몇 곡 불렀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집에서 미리 찾아온 성경 구절을 읽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농부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졌다.
우리는 차례차례 돌아가며 그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드렸다. 기도는 길었다.
그 농부에게 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치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얻는 것이었다.

농부는 이내 잠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잠이었다.
아주머니가 고마워하며 우리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돌아온 후에도 그 농부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에게 깜짝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농부의 가족이 모두 새벽기도회에 나온 것이다.
병들었던 농부는 옷을 멋있게 차려 입고 가족들보다 먼저 교회에 왔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이 농부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전에는 문둥병자들을 멀리하던 그가 이제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바로 뛰어다니며 자기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큰 믿음의 용기를 얻게 되었다.




10.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안녕하세요?  

한국에서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이것은 "평안하십니까?"라는 뜻이다. 이 인사말과 관련된 일이 하나 생각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알고 지내는 여의사가 있었다. 오십대 초반인 그 의사는 광주에서는 꽤 널리 알려진 교수였다.
"자네가 그 의사와 한번 이야기해볼 수 없을까? 벌써 몇 달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왠지 자네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친구가 나에게 제안해왔다.

영호에서도 할 일이 많긴 했지만, 이 여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모르는 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 갔다. 사무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문패에 그 교수의 직함과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방문한 것에 그리 놀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두 시간이 넘도록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미국에서 보낸 유학생활과 화려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아주 거창하게 설명하더니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감탄하며 맞장구쳐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그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마침내 결정적인 지점에 이르렀다. 지난 해 좋은 교수 자리가 하나 생겼다.
이 교수는 그 자리를 꼭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실패를 맛본 후에 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매사에 만족할 수 없었고 두통과 우울증까지 생겼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상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전 모든 걸 소유하고 있습니다. 돈도 많고 이름도 꽤 알려졌죠. 좋은 직장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몹시 불안합니다. 목사님,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해야 다시 평안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했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의 우울증에 대해서 의학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문둥병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에 한번 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만족이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 의사 교수는 정말 우리 마을에 찾아왔다.
우리는 마을 주위를 함께 거닐다가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우리를 본 아주머니는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목사님, 이것 쪼까 보씨오. 저번주에 손가락이 세 번째로 끊어져 불렀거든요.
근디 아직 일곱 개는 멀쩡하다니까요. 정말 감사해 죽겄네요."

어안이 벙벙해진 교수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뭘 감사한다는 거지요?
저 아주머니는 늙고 못생긴 데다가 문둥병 환자이고 손가락도 일곱 개밖에 안 남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만족하면서 웃을 수가 있는 거죠?"

나는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그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다른 점입니다. 저 아주머니는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손가락도 일곱 개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자기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저 기쁨은 하나님의 값진 선물이지요.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교수님은 건강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교수님은 이제껏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지요.
교수님은 항상 자기 힘으로 기쁨을 만들려고 하지만 교수님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지요."

그는 이 진리를 깨달았을까?
우리는 아무말 없이 한참 걸었다. 교회 앞에서 그가 멈춰 섰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눈치였다.

"목사님, 저는 중요한 걸 배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것을 감사할 때 기쁨과 만족이 온다는 것을요.
하지만 전 도무지 누구에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상황이 나빠질 때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조금 후에 집에 도착했다.
"잠깐만 기다리시겠습니까? 조촐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나는 식사기도를 드리고 나서 그에게 음식을 권했다.
상 위에는 밥 한그릇과 김치와 맵게 무친 나물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한 술도 뜨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목사님, 이걸로 충분하세요? 고기나 생선도 없이 밥하나 김치 하나로 식사하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대체 목사님은 뭘 가지고 그렇게 만족하신다는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목사님이라면 서울에서도 아주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가구도 없는 방 하나에 검정 고무신으로 지내다니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되네요.
목사님은 하나님께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시나요? 아까 하나님께 기도하셨지요? 도대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지요?"

나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교수님, 지금 혹시 6,000원 정도 있습니까?"
그에게 그만한 돈이 없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함께 시내로 나가 서점에 갔다. 나는 성경을 하나 집어 그에게 건네 주었다.
"이 책을 읽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될 것이고, 평화의 샘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 교수는 성경을 가지고 다시 광주로 돌아갔다.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그 교수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그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버스 한 대가 마을 어귀에서 들어서며 큰 소리로 경적을 울렸다.
서른다섯 명 가량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 여교수와 조교 의사들, 그리고 의과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우리 마을과 근방에 사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도 몇 상자씩 가져왔다. 일요일 저녁에 우리는 모두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 방문으로 우리만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교수와 교수를 도와주러 함께 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족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 의사는 평안을 찾는 질문의 답을 찾은 것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평안을 주셨다.

"안녕하세요?"

"평안하십니까?"




11.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가족의 반대를 이겨낸 새댁  

이웃 마을에 사는 어는 젊은 새댁이 우리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댁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캄캄할 때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몰래 빠져 나오곤 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시댁이 워낙 엄격한 유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새댁은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의 낯선 신앙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침 시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대문 곁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얘야, 이렇게 일찍 들에 나갔다 오는 길이냐? 그런데 왜 그렇게 손이 말끔하지?
이제 바른 대로 말하거라. 너, 문둥이 마을에 있는 예수쟁이들과 함께 있다가 오는 거지?"

새댁은 시아버지의 다그침에 놀라고 겁이 나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가족들이 모두 마당으로 뛰쳐 나왔다.
젊은 남편은 황당한 얼굴로 자기 부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망신당할 짓이라도 했어?"

"니 처가 문둥이 마을에 있는 교회에 다닌단다. 여태까지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말이다.
그래도 누가 내게 알려줬으니 망정이지.
그래서 내가 이 아침부터 니 처를 문간에서 지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발칙한 것 같으니라구!"

노인은 뒷짐을 진 채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남편이 기겁해서 아내를 꾸짖었다.
"아버지가 당신을 야단치는 것은 당연해.
왜 문둥이 들이 믿는 다른 나라 신을 믿어가지고 우리 집안을 쑥대 밭으로 만드는 거야?"

다시 시아버지가 말을 가로챘다.
"네가 예수교를 믿어서 우리 집안의 기강은 엉망이 됐다.
조상님들이 우리를 보호하시다가도 너 때문에 거두어 가시지 않겠느냐?
예수쟁이들이 조상들께 제사도 안 드린다는 말은 나도 들었다. 너도 이제 제사를 안 지낼 셈이냐?"

모두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댁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부터 집안 식구들이 모두 새댁을 구박하고 구속하기 시작했다.
새댁은 그 후로 새벽기도회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새댁이 집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몇 주 후에 새댁은 가족들의 강요에 못이겨 교회에 나오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새댁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저녁에 내가 심방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과 시누이가 그 새댁을 옮겨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처가 몹시 아픕니다.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걷지도 못하고 헛소리만 해대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남편이 말했다. 난 그들을 바라보다가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새댁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나누어 앉았다.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했다.
특히 이 여인이 견뎌내야 했던 내적 싸움을 위해 기도했다. 시누이가 울기 시작했다.

"저희도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희 때문에 언니가 아프다니! 목사님,
저희가 정말 잘못했어요. 이 죄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요?"

시누이는 새언니가 낫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죄를 뉘우치는 마음과 새언니에 대한 염려를 할 수 있는 대로 모두 하나님께 내려 놓으십시오."
두 사람은 내 말대로 소리내어 함께 기도했다.

갑자기 새댁이 눈을 뜨고 입술을 움직였다. 기도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새댁이 잘 아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댁도 같이 찬송하려는 듯이 입술을 움직였다. 반응을 보이지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찬송가를 내밀었다.
그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또렷하던지 우리는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기도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아내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여동생이 아픈 새댁과 함께 기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댁의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친척들은 남편과 그 여동생의 마음이 변해가는 것을 보고
예수교가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놀라워했다.

새댁과 남편과 시누이는 한 주도 빠짐없이 영호로 예배드리러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상의 보복도, 문둥병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시아버지까지도 내가 무엇을 설교했는지 물어보고, 아무도 몰래 아들의 성경을 뒤적거리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의 반대는 없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