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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더 중요한 약속

by 올미랭 2020. 7. 31.

[2020년 7월 31일 큐티, 중국인 지체들과 나누기 위해 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롬 4:21)"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그 약속 진짜 이루어진다고 믿고,
그 약속 분명히 믿는다는 증거로 마음으로만 Yes하지 않고, 저의 영혼육 전존재로 '그 약속대로 살아가기'를 결정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네 자손 많아질거야~하는 약속보다,
네 인생 잘될거야~하는 약속보다,
네 가정, 교회, 나라 잘될거야~ 하는 약속보다,
"나 다시 갈거야!"하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보다 주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더 크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 다시 오심을 진정으로 갈망하는가?
우리 안에 그 갈망이 있는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1. 나중에 오세요
오시는 것 좋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이생의 삶은 일단 축복해주시구요. 내 생애 다한 후에, 내 자녀들 생애 다한 후쯤에 오세요.

2. 오시는 것도 좋지요.
안 오셔도 상관없구요. 내가 죽으면 천국갈텐데, 주님이 이 땅에 다시오시든 말든 별로 관심없어요.

3. 설마 다시 오시겠어?
괜찮은 종교적 사상일 뿐이지. 초대교회 지하교인들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는게 나았던 거지,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잖아. 성경은 그때 그때 문맥이 달라.

코로나 기간,
요한계시록을 많이 읽고, 듣고, 생각하고, 연구했습니다.
종말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도 공부했습니다.

무척 흥미있는 주제였습니다.
먼 주제가 아니라 우리 실생활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종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신학이 다르고,
교단이 나뉘고,
선교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교회가 어려워지고, 주일학교 아이들이 줄어드는 이유는,
계시록을 가르치지 않고, 설교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석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단 시비 붙이는 문화가 교회안에 자리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 진짜 이루어진다고 믿고,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 분명히 믿는다는 증거로 마음으로만 Yes하지 않고, 저의 영혼육 전존재로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대로 살아가기, 다시 오심을 준비하기, 다시 오신다고 알리기'를 결정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심만이 온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다시 오심 준비하기 위해,
때를 못얻는 오늘도 복음을 전합니다.

- 네팔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전합니다.
- 티벳 난민들에게 깨끗한 수건을 전합니다.
- 중국인들에게 창조신앙을 가르치려는 새로운 계획을 구상합니다.
- 인도차이나 소수부족 성도들의 자립을 도울 비즈니스를 시도해봅니다.
- 재일 조선인들의 마음을 더 얻기 위해, 현지 협력자들과 계속 대화를 해봅니다.
- 한사람이 한사람을 제자양육하는 외국어 교재 제작을 위한 비용을 구해봅니다.
- '순전한 선교' 도서를 통해 생각이 같은 분들과 대화의 끈을 이어갑니다.
- 선교사 자녀들의 학습과 인격을 도울 선생님들에게 부지런히 부탁합니다.
- 추방 선교사님 가족에게 따뜻한 식사 대접할 분과 시간 장소를 의논합니다.
- 지난 주에 우연히 만난 재중동포 가족들을 이번 주일 예배로 정중히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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