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기자, 2018년 7월)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캐나다 토론토시 중심가에서 조금 서 남쪽에 떨어진 곳인 퀸, 랜즈다운 거리에는 티베트 타운이라고 부를만큼 많은 티베트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알록달록 색갈의 줄무늬가 새겨진 전통 티벳의상을 입은 티벳여인들은 이곳에서는 쉽게 볼수 있고 티벳글자로 씌여진 상점과 소점포들이 있고 티벳사람들의 독립기념일 행사라든가 행진이 이곳에서 많이 열립니다. 이곳은 또한 작은 티벳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가 티벳 전통의상을 처음으로 본 것은 북한에서 고등중학교 도서관에 있던 “조선”이라는 화보에서였는데요. 조중친선을 보여주는 화보에서 흔히 알고 있던 중국 치포가 아닌 줄무늬 모양의 특히한 복장을 입고 춤추는 중국소수민족 여인들이라 소개되어 눈여겨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이곳 캐나다에서 실제 눈으로 보게 되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티베트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것은 3년전 이민자들이 보통 처음 이민올때 다니는 토론토시 고등러닝 센터에서였는데요.
보통 티벳사람들의 외모는 전통적인 극동아시아인 즉, 중국, 한국, 일본사람들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제가 중국사람이냐고 물으니 단호한 표정으로 중국인이 아니라 티베트사람이라고 또렷이 말하던 젊은 티베트 청년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후로도 많은 티베트사람들을 이곳 토론토에서 만날수 있었는데요.
현재 캐나다에는 8천명의 티베트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은 이곳에 난민으로 정착하는데요. 캐나다에 처음으로 티베트 난민이 도착한것은 1970년과 1971년이었고 이때 240명의 티베트 난민을 받으면서 캐나다 정부는 이를 전반적인 티벳트 난민들에 대한 재 정착의 시범적인 사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국제적으로 북한난민과 티벳난민은 많은 면에서 비슷합니다. 북한에서 티베트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설산의 눈물”이라는 영화인데 한마디로 티베트인들의 어떻게 라마승들에게 자신들의 순수한 삶을 바쳐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가를 보여준 영화인데요. 그때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이 한 라마승이 자신들에게 반항하는 한 티베트 가족의 어린처녀를 데려가면서 “가죽을 벗겨 종교예식에 쓸 북을 만들겠다”고 하며 끌고가던 모습이었습니다. 당연히 영화를 보면 소수민족인 티벳트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느낄 수 있었고 이를 모택통의 중국공산당이 해방시켜줬다고 당시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티베트사람들의 실체가 아니였습니다.
제가 이곳 토론토에서 만나본 많은 티베트사람들은 한번도 자신들이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싶이 티베트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우는 히말라야산이 있는 티베트 고원에 있고 우리나라 전체 면적으로 13배입니다. 티베트는 아주 옛날부터 티베트 왕조가 다스려왔고 10세기에는 원나라의 간접적 지배을 받다가 청나라때 들어와 청의 보호령으로 됩니다.
19세기 초 청나라가 멸망하자 티베트는 완전한 독립을 선포했으나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모택통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인민해방군을 보내 티베트를 점거합니다. 국제적 관례로 보면 엄격한 침략이고 불법점거입니다. 이로써 티베트는 최초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며 많은 티베트 인들이 정치적 이유 또는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중국은 반항하는 티베트 인들에 대해 고문과 학살로 철저히 탄압했고 이후 티베트에 1,300여개의 사찰은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 단지 17개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했던 티베트인들은 굴하지 않고 해외에서 꾸준히 중국정부의 이런 부당함을 알리고 투쟁해왔습니다.
지난 2007년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탄원으로 스티븐 하퍼 당시 캐나다 총리는 2천여명의 티베트 난민을 캐나다로 데려오는 2년간의 프로그램을 조직했고 이는 티베트인들의 대대적인 캐나다 정착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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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에는 캐나다에 정착하는 티베트 난민들과 어떻게 중국이 티베트를 불법 점거했는지에 대해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이후의 티베트인들의 생활과 그 곳을 벗어난 이들의 오랜 망명생활, 그리고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캐나다정부의 정책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토론토 시 고등 러닝센터에서 만난 티베트 여성, 라나는 그의 옷차림과 투명한 화장으로 차린 그의 모습을 보면 거의 완벽한 남한의 신세대 여성과 비슷합니다.
라나는 간단한 한국말도 할 줄 알았는데요. “자기야, 사랑해” 등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말들과 한국노래, 내가 모르는 한국의 연예인들의 이름도 줄줄이 외우고 있었습니다.
남한의 한류가 이렇게 티베트의 젊은 이들에게도 인기라는 사실이 저 한테는 큰 감동이었지만 그보다 라나는 이제 캐나다에 온 지 6개월 밖에 안되는 난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라나는 자신의 고향은 티베트가 아닌 인도라고 전했습니다.
많은 티베트 인들은 1949년 중국공산당이 중국 전 지역을 장악하면서 티베트를 불법 점거하자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히말라야 산을 넘어 인도로 탈출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티베트인들의 탈출은 항상 위험을 동반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티베트 인 들은 대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들어가 네팔과 중국의 국경수비대를 피해 카투만두의 유엔 난민안내소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다시 인도의 난민촌으로 가야 비로소 안전 할 수 있습니다.
네팔과 중국 국경사이에는 이 국경을 넘으려는 티베트 인들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데요. 지난 2006년 한 티베트 여 승려가 이 국경을 넘으면서 중국 국경순찰대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장면은 당시 그 부근의 초오유산을 등반하던 루마니아인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티베트 인들은 인도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심지어 인도에서 태어나도 인도의 시민권을 가질수 없습니다.
그리고 1949년 현재 인도에는 약 13만명의 티베트 난민들이 살고 있고 인도 북서부 도시인 다람살라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습니다. 이 망명정부는 중국으로부터 티베트의 자유독립을 목표로 티베트 난민들의 정신적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인도에서의 삶으로 티베트 인들은 캐나다나 유럽 등,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시민권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로 다시 떠나고 있는데요. 지금 전 세계에는 인도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호주 등 15만명의 티베트 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UNHCR 즉 유엔난민기구인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는 1966년 부터 티베트 난민의 캐나다 정착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 1971년 3월, 최초로 캐나다에 228명의 티베트 난민들이 도착했습니다. 이는 캐나다가 비 유럽계 난민들을 받아들인 첫 사례가 되었는데요, 캐나다 정부는 이 228명의 성공적인 캐나다 정착여부가 앞으로 더 많은 티베트인 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하게 될것 이라고 보고있습니다.
결국 이 228명의 티베트 난민들은 온타리오주, 퀘백 주 등 캐나다 전역의 11개 주에서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이들은 언어와 직업훈련을 받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이런도움이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티베트 난민들은 농장, 공장에서 성실히 일했고 이들이 갖고 있는 삶의 정직하고 성실한 모습과 불교적 가치는 캐나다사회에서 인정받아 캐나다 정부는 이로 인해 더 많은 티베트 난민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일 것을 결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는 8,000명의 티베트 난민들을 받아들였으며 이들의 인도에서의 탈출과 이곳에서의 난민 정착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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